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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드(Eva Filed)
필드는 에비슨의 병원 확장 정책에 따라 내한하여 한때 병원을 떠나기도 하여 실제로 활동한 기간을 짧았다. 그녀는 아이오와주의 디모인 출신이었다. 1896년 시카고 여자의대를 졸업하고 쿡 카운터의 메리 톰슨 병원에서 인턴을 하였다. 1897년 10월 14일에 내한하여 제중원에 부임하였다. 1890년에 에브슨이 안식년으로 캐나다에 갔을 때는 실즈와 함께 제중원의 책임을 맡았다. 1901년에 전도활동에만 전념하기 위해 병원을 떠났다. 1908년에는 최초의 시편 번역자인 유대인 북장로교 선교사 피터스와 결혼했다. 1926년에 필드가 죽자 피터스는 아내를 기념하기 위해 세브란스병원에 대수술실을 마련하였다.
사록스(Alfred M. Sharrocks)
샤록스의 제중원 활동은 1년 정도였다. 그는 미주리 주의 파크 대학을 졸업하였다. 1899년 9월 29일 북장로교 선교부의 의료선교사로서 부인과 함께 내한한 그는 제중원에서 근무하면서 에비슨을 도와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약물학, 세균학, 위생학 등의 교과서를 편찬하였다. 1900년에 평양 지회로 옮겨가 주로 북부지방에서 활동하였다. 1917~1919년에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 이사로 활동하였다. 그의 딸 엘라는 1926년 내한하여 세브란스병원에서 교수와 간호과장을 역임하였다.
아버클(Victoria C. Arbuckle)
아버클은 제중원의 활성화를 위해서 에비슨이 미국 남북장로교 선교부에 간호업무를 맡을 미혼 여성을 요청함에 따라 1891년 9월 21일에 북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내한하였다. 제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다가 1896년 헌터와 결혼하고 시작하였다.
테이트(Mattle Samuel Tate)
테이트는 짧은 기간 간호사로 일했다. 1891년에 안식년을 맞아 미국 체류 중인 언더우드가 메코믹 신학교에 와서 한 강연에 감동을 받아 한국 선교사가 되기를 자원하였다. 그녀는 오빠와 함께 1892년 2월 남장로교 선교부에서 임명을 받아 11월 3일 내한하였다. 서울에 체류하면서 한국어 공부를 하며 부녀자를 대상으로 전도활동을 하던 중에 에비슨이 제중원에서 환자를 돌볼 미혼 여성을 필요로 하여 제중원에서 짤은 기간 동안 간호 업무에 종사하였다. 1894년부터는 전주에서 여성 사역에 종사하였다.
제이콥슨(Anna P. Jacobson)
제이콥슨은 간호사로 약 2년 동안 헌신하다가 요절했다. 그녀는 노르웨이 태생으로 루터교회에서 자라났으나 장로교인이 되었다.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준비했으나, 부모의 강력하 반대와 결혼 강요로 인해 미국으로 이주하였다. 메인 주의 포틀랜드에 있던 메인종합병원 간호학교에서 간호교육을 받았다. 재학 중에 선교사로 지망하여 1894년 4월 6일에 내한하였다. 북장로교 선교부에서 파송받은 최초의 정식 간호사인 그녀는 제중원에서 간호학, 붕대법, 안마 등을 가르쳤다. 1895년 서울에 콜레라가 만연했을 때 파이팅과 에비슨을 헌신적으로 도왔다. 제중원에서 3년간 환자 치료를 위해 주야로 고생하다가 아메바성 간농양으로 1897년에 29세를 일기로 사망하여 양화진에 묻혔다. 에비슨은 그를 기념하여 병원에서 활동하는 여자 선교사의 숙소 건립을 서둘렀다.